
바라카 원전 3호기 전경. / 사진 제공=한국전력
미국 기술로 원전을 짓기 시작한 한국이 반세기 만에 미국 본토에 한국형 원전 2기를 짓는 길을 열었다.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전 6기 건설에도 한국 기업이 참여하면서 미국 원전 시장에서 역할도 시공과 기자재 공급까지 넓어지게 된다.
팀코리아는 여기에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 인수까지 추진한다. 미국 원전 건설을 넘어 사업 이익과 공급망까지 공유하면서 제3국 원전 시장으로 참여 무대를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1200억달러의 전략투자 기금을 활용해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짓는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에 합의했다. 한국형 APR1400 2기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를 함께 짓는 구조로, 한미 양국 정부와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웨스팅하우스가 프레임워크에 참여한다.
■ 기존 SA 고쳐 APR1400 美 진출 허용…韓 EPC·기자재 참여 확대
이번 프레임워크가 현실화하면 APR1400은 미국에 처음 건설되는 원전 노형이 된다. 그동안 K-원전은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하려 해도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타협협정(SA)이 걸림돌이었다. 앞서 한전과 한수원은 APR1400에 적용된 원전 기술의 권리를 놓고 웨스팅하우스와 분쟁을 벌인 끝에 지난해 SA를 맺었다. 하지만 이 협정에 따라 북미 등 일부 시장에서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신규 원전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웠다.
이번 프레임워크에는 기존 SA를 고쳐 APR1400의 미국 진출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 SA가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기업 계약이었다면, 이번에는 한미 양국 정부까지 참여한다. APR1400의 미국 진출에 필요한 기술사용료와 시공 참여, 핵연료 공급 조건은 앞으로 기업 간 협의를 통해 정할 예정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이번 원전 프레임워크 프로젝트에는 시공 능력과 공급망을 확실히 갖춘 한국의 EPC 업체들과 국내 기자재 공급망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게 될 것"이라며 "업체 간 불협화음이나 공급망 미비로 인한 코스트 오버런 이슈는 대폭 줄어들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양측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웨스팅하우스는 설계 기술은 있지만 실제 원전을 지을 시공 역량과 공급망 확보가 과제였고, 한국은 미국 시장 진출이 필요했다. 미국에서 협력이 성공하면 APR1400은 한국이 독자 수출하고, AP1000 사업에는 국내 EPC·기자재 기업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제3국 공동 진출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원전 건설은 먼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2기를 짓고, 이어 APR1400 2기와 AP1000 2기를 함께 추진한 뒤 마지막으로 AP1000 2기를 추가할 계획이다. 원전 8기 건설에 쓰이는 돈은 최대 1200억달러다. 이 가운데 실제 공사비로 잡은 돈은 1000억달러고, 나머지 200억달러는 공사비가 예상보다 늘어날 때를 대비한 예비비다. 예비비를 쓰지 않아도 1200억달러 투자 약속을 이행한 것으로 인정된다. 반대로 사업비가 예상보다 더 늘더라도 한미 전략투자 기금에서 추가로 돈을 넣지는 않는다. 정부는 공사 지연과 비용 증가를 최소화해 200억달러의 예비비를 최대한 쓰지 않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원전 핵심 기자재는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정부는 연말까지 최대 100억달러를 먼저 투입해 장주기 품목을 확보하는 방안도 협의했다. 사업 일정을 앞당기고 한국산 기자재의 참여 기회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 추진…美 넘어 글로벌 원전시장 노린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 기업의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도 추진할 방침이다. 미국 원전을 지어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AP1000 사업의 이익과 공급망까지 함께 나누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지분 5~10% 인수를 검토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투자 조건은 기업 간 협상을 통해 정할 예정이다.
다만 한전과 한수원은 재무 부담을 고려해 상징적인 수준의 지분만 보유할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는 민간 기업들이 참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민간 기업들은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서유럽 등 해외 원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분 확보에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인수 상한을 10%로 잡은 것도 이사회 참여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다. 향후 협력이 소형모듈원자로(SMR) 시장으로 넓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전과 한수원의 해외 원전 사업 참여까지 늘어나면 K-원전의 수출 시장도 더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서 운영·건설되고 있으며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인도 등에서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 기업이 AP1000 공급망에 들어갈 경우 미국을 넘어 이들 시장까지 참여 기회를 넓힐 수 있다.
글로벌 원전 시장의 수주 경쟁은 치열하다. 2009년 이후 러시아는 해외에서 53기의 원전을 수주했고 미국은 13기, 중국과 프랑스는 각각 10기를 확보했다. 한국은 같은 기간 아랍에미리트(UAE) 4기와 체코 2기 등 6기를 수주했다. 이번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가 미국 진출을 넘어 해외 수주 통로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 장관은 "미국 내에서 이번 협력이 성공 사례로 자리 잡는다면, 향후 한미 양국 기업 간 상생 협력을 통해 글로벌 원전 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승구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